제7장
서미희는 한 가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지난 생에서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국 우승을 앞둔 마지막 순간, 그녀는 김서아에게 자리를 빼앗겼다.
이게 대체 무슨 가족이란 말인가?
서미희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팀에 들어갈 생각 없어요. 저는 공부에 집중해서 시험 준비할 거예요.”
서유민이 비꼬는 투로 말했다. “근데 예전엔 나한테 게임 가르쳐 달라고 빌고, 밤마다 나 따라다니면서 훈련하고, 정식 팀원이 되겠다고 했을 땐 왜 공부 열심히 하겠다는 말은 안 했지?”
서미희의 마음이 은근히 아파왔다.
그녀가 유민 오빠를 쫓아다니며 게임을 했던 건, 유민 오빠와 좋은 관계를 맺고 더 많은 공통 관심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서미희가 대답했다. “예전에 게임하느라 공부를 소홀히 해서요. 지난번 월말평가 성적도 많이 떨어졌고요. 그래서 더는 게임을 하고 싶지 않아요.”
서유민은 말문이 막혔다. “그래, 어쨌든 후회나 하지 마! 나중에 대회 시작하면, 외부 사람들은 김서아 한 명만 보게 될 거고, 걔가 우리 서씨 집안의 일원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서미희가 이렇게 분수를 모른다면,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그도 아쉬울 것 없었다.
“그것도 괜찮네요.”
서미희는 더 이상 실랑이하고 싶지 않아 몸을 돌려 식당을 나섰다.
그녀는 방으로 돌아와 감정을 추스르고, 진지하게 숙제를 시작하며 잊어버렸던 개념들을 다시 익혔다.
—
다음 날 방과 후.
서미희와 김서아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교문에 도착했다. 기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서아가 차 앞에 서서 말했다. “아, 맞다. 나 오늘 캠프 가야 해서, 기사 아저씨가 먼저 데려다주실 거야. 우린 길이 다르겠네.”
기사 아저씨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아가씨, 유민 도련님께 연락받았습니다. 서아 아가씨를 먼저 모셔다드려야 해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습니다.”
서미희는 전혀 개의치 않고 대답했다. “저는 택시 타고 갈게요.”
김서아는 차에 올라타며 살짝 들뜬 표정을 지었다. “미희 언니, 나중에 내가 유민 오빠 잘 설득해 볼게.”
서미희는 고개를 홱 돌려 김서아에게 뒤통수만 보였다.
김서아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남몰래 입술을 깨물었다. ‘서미희, 두고 봐. 언젠가 네 모든 걸 빼앗을 테니까! 이건 네가 나한테 빚진 거야!’
서미희는 무료하게 길가에 서 있다가, 문득 서씨 집안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학교 근처에서 독서실이나 찾아볼까.
“꼬마야, 방과 후에 집에도 안 가고 길가에서 뭘 어슬렁거려?”
서미희가 뒤를 돌아보자 잘생긴 남자가 보였다.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가, 그 눈을 마주하고 나서야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놀랍게도 독설가 보건교사였다.
평소에는 마스크에 흰 가운 차림이었는데, 갑자기 다른 옷을 입고 있으니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주우지가 그녀 앞에 서서 말했다. “물었잖아.”
“지금은 집에 가기 싫어서요. 숙제할 만한 독서실을 찾고 있어요.”
“따라와.”
서미희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따라나섰다.
그녀는 그를 따라 학교 보건실로 향했다. 문 앞에 서서 그녀가 말했다. “여긴 왜요? 저 이제 다 나았는데.”
주우지가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여기가 독서실보다 조용하고, 더 안전해.”
서미희는 잠시 생각해 보니 그럴듯한 말이었다.
그녀는 책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럼 실례할게요.”
그녀는 교과서와 자료를 꺼내 진지하게 숙제를 시작했다.
주우지는 그녀를 한번 힐끗 보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몸을 돌려 바깥 진료실로 나가며 문을 닫았다.
서미희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시간이 꽤 늦어 있었다.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명패를 보았다. 그 위에는 독설가 의사의 사진도 있었다. 아, 이름이 주우지였구나.
“다 봤어?”
서미희는 딱 걸렸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명패를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함부로 뒤진 거 아니에요. 우연히 본 거예요.”
“숙제는 다 했고?”
“네. 모르는 건 못 풀어서 내일 선생님께 여쭤보려고요.”
주우지가 그녀 앞으로 다가와 숙제 노트를 홱 가져갔다. “이렇게 쉬운 것도 못 풀어?”
서미희는 살짝 기가 죽어 고개를 숙이고 교과서를 내려다봤다. “네. 예전에 성실하지 못해서 다른 일 때문에 공부를 소홀히 했어요.”
“잘 들어.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주우지는 펜을 들고 연습장에 필기하며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서미희는 멍하니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기분이 복잡해졌다.
김서아 때문에 그녀는 친구가 거의 없었고, 심지어 선생님들조차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누가 먼저 나서서 문제를 설명해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주우지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의 눈매는 무심했다. “너 그 집중력으로 수업 시간에 딴생각만 했지!”
서미희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열심히 들을게요.”
주우지는 그녀의 순한 모습을 보고 목울대를 살짝 움직이더니, 다시 인내심을 갖고 설명을 이어갔다.
저녁 무렵, 따뜻한 색의 조명이 두 사람 사이를 감쌌다.
서미희는 앉아 있고, 그는 옆에 서서 한 손으로 책상을 짚은 채 풀이 과정을 써 내려갔다.
“너 머리는 직선이라 휘어지질 않냐? 이건 바로 전 문제랑 풀이법이 똑같잖아.”
“이 문제처럼 이렇게 간단한 함정을 못 알아봐? 눈은 장식이야?”
“너 아이큐 테스트는 해봤어? 기준 미달 아니야? 다시 풀어!”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기복이 없었지만, 내뱉는 욕은 사람 속을 후벼 팠다.
다행히 서미희는 그가 독설가 보건교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벌써 무너졌을 것이다.
서미희는 결국 끝까지 버텨냈다.
그녀는 다 푼 숙제를 챙기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주 선생님. 정말 대단하세요. 이런 것도 다 기억하시다니.”
주우지는 펜을 빙글빙글 돌리며 탐색하는 듯한 눈빛으로 물었다. “집에서 과외는 안 시켜줘?”
서미희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 사람들한테 빚지고 싶지 않아요.”
과외비가 얼마나 비싼데. 지금 그녀는 돈도 없고, 서씨 집안사람들에게 입을 열고 싶지도 않았다.
주우지는 그녀의 하얀 옆얼굴과, 감정을 가리고 있는 내리깐 속눈썹을 바라보았다.
서미희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주 선생님, 앞으로 모르는 거 있으면 와서 여쭤봐도 될까요?”
남자는 고개를 돌리며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시간 없어.”
거절당했지만 서미희는 화내지 않고 얌전히 책가방을 챙겼다.
주우지가 책상을 톡톡 두드리더니, 고개를 돌린 채 한마디 덧붙였다. “내 기분 봐서.”
서미희가 환하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주 선생님. 아니, 감사합니다, 주 스승님!”
그녀는 말을 마치고 그의 반응을 기다리지도 않고 책가방을 들고 뛰쳐나갔다.
주우지는 눈을 반쯤 뜨고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뭐, 시간 때우기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지.
—
서미희가 집에 돌아왔을 땐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집사가 다가와 말했다. “도련님과 서아 아가씨는 회식이 있어서 저녁 식사는 안 하신답니다.”
“네.”
서미희는 혼자 식당으로 가 밥을 먹었다. 모처럼 조용해서 좋았다.
그녀가 휴대폰을 켜자, 아니나 다를까 김서아가 올린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보였다. [오빠들이랑 맛있는 거 먹는 중]
그녀는 오빠들이 모두 김서아를 향해 사랑스럽게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서미희는 그저 한번 쓱 보고는 바로 인스타그램을 끄고 자기 밥만 먹었다.
다음 날, 서미희는 일어나서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오빠들은 아직 오지 않았고, 김서아 혼자만 있었다.
김서아가 은근슬쩍 자랑했다. “나 어제 팀 훈련 갔을 때 실력이 엄청 늘었어.”
서미희는 자리에 앉아 무표정하게 밥만 먹을 뿐, 김서아를 상대하지 않았다.
김서아는 기분이 좋아서 서미희의 쌀쌀맞은 태도를 신경 쓰지 않았다.
겉으로는 서미희가 태연한 척해도, 속으로는 분명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일 테니까!
서미희는 두세 번 만에 아침 식사를 끝내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기사 아저씨는 옆에 선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서아 아가씨가 아직 안 나오셨습니다. 같이 가시려면 기다리셔야 합니다.”
서미희는 차 안에서 십 분 넘게 기다렸지만, 김서아는 오지 않았다.
그녀는 시간을 한번 확인하고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이러다 늦겠어요!”
그녀는 점점 더 서씨 집안의 모든 것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서미희는 더 기다리지 않고 차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넷째 오빠 서북현이 나왔다. “서아 좀 더 기다려 주는 게 그렇게 힘드냐? 걔 아버지가 예전에 네 목숨도 구해줬잖아. 널 버리고 도망가지도 않았는데, 넌 지금 서아 잠깐 기다려 줄 인내심도 없는 거야?”
서미희의 손이 문손잡이를 죽을힘을 다해 붙잡았다.
